뮤지컬 - 사랑은 비를 타고 by 영두리

(이미지 출처 : 사랑은 비를 타고 홈페이지 메인 캡쳐)


지인의 선물로, 메말랐던 일상에 단비가 내렸습니다.
이름만 어렴풋이 들었던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를 인켈아트홀에서 써니와 함께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14년째 이어지는 국내 창작 뮤지컬(Singing in the rain이 나오는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와는 내용이 다릅니다.)로, 세 명의 배역인 '동욱, 동현, 유미리'를 숱한 스타들이 거쳐갔다고 합니다. 자료를 살펴보니 남경읍, 남경주, 최정원, 김장섭, 박건형, 엄기준, 양소민 등과 김지우, 소유진, 결, 박완규, 리치 등 대중적 미디어에서 자주 접했던 배우들도 출연한 바 있네요.

어제 공연에서는 큰 형 동욱 역에 듬직한 덩치에 섬세한 손길과 표정을 갖춘 자상함이 배어나는 멋진 목소리의 소유자 손광업씨, 막내동생 동현 역에 밝고 거칠고 순수하고 고뇌하는 젊음의 요소를 모두 갖춘 듯한 정원영씨, 불청객인 유미리 역에 좌충우돌 산만하고 발랄하고 정 많고 활달한 김여진씨가 캐스팅되었습니다.

적다보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은 공연관람 후기를 적습니다.


엄마가 된 동욱
동욱은 아직 결혼을 못한(혹은 안한) 노총각입니다. 시집 간 여동생들 빨래며 반찬까지 챙기며, 1년에 한 번 짧은 엽서글로 안부를 전하는 막내동생을 기다리며 지냅니다. 이 버릇은 이십대 초반 부모님을 여읜 후 생긴, 어쩌면 스스로 선택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동생들은 그런 배려가 간섭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흔 살 생일파티에 동생들을 초청했는데도 이 핑계 저 핑계대면서 다들 피합니다.

돌아온 동현
피아노 경진대회에서 입상할 정도로 재능을 갖고 있던 동현은 부모님의 이른 소천 때문인지 형의 잔소리가 지겨웠던 건지 군대 입대 후 7년 째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주 잊은 건 아닙니다. 매년 형의 생일에 엽서를 보내긴 하지만 그 안에 하고싶은 말을 다 담지 못하고 짧은 한 줄만 남기며 이녘바다를 떠돕니다. 그러다가 결국 피아니스트의 생명이랄 수 있는 손을 다친 채 그동안 모은 돈과 보상금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서로에게 말 못하는 이야기
중학교 음악선생님인 동욱은 말초신경 마비가 온 상태로 휴직 중입니다. 그러면서 더 간절해지는 건 가족. 하지만, 그가 간절해 하면 할수록 더 멀어지는 느낌을 줍니다.
손마저 다쳐서 집에 오게 된 동현에게는 형의 기대가 부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걸 감추기 위해서 철저하게 형의 관심과 권유를 외면하려고 합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기에...

좌충우돌 유미리
사회 새내기로 결혼기념일 방문 이벤트를 하는 그녀. 집도 잘 찾아다니지 못하고, 누가 고객인지 알아채는 눈치도 없는, 사회 물정 모르는 맹랑한 그녀가 두 형제 사이에 끼어듭니다. 결혼기념 이벤트 전문이었던 그녀는 생일축하 이벤트를 부탁받아 마련하게 되고, 그 덕분에 어쩌면 혼자서 쓸쓸히 보냈을지도 모르는 동욱의 생일이 근사한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날로 자리잡게 됩니다.

두 대의 피아노
형제의 연처럼 두 대의 피아노가 각각 한 켠에 멀찌감치 놓여 있습니다. 지금까지 동현이 집에 없었던 7년 동안, 한 대의 피아노는 현을 울리지 않은 채 다른 한 대의 피아노를 바라보았을 겁니다. 이제 그 피아노마저 동욱의 지병으로 인해 서서히 자신의 역할을 잃어갈 겁니다. 오랜만에 이 두 대의 피아노가 서로의 음을 냅니다. 피아노에서 흐르는 선율은 마치 서로 대화를 나누는 듯 합니다. 너무 오래 말을 나누지 못해 부끄러운 듯, 조금은 거칠고 탁한, 하지만 표현되지 않은 것 이상으로 서로에 대한 애정을 담은 현의 울림이 소극장을 가득 채웁니다.

창 밖에는 비
무대에는 시종일관 비가 내립니다. 비는 참 짓궂기도 합니다. 귀찮은 관계에 핑계거리를 제공합니다. '비가 많이 와서~' 둘러댈 수도 있습니다. 그런 비를 뚫고 내 공간에 들어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에 젖은 채 내게 와서 비가 멎을 때까지, 아니면 더 오래도록 머뭅니다. 이루어질 관계라면 비는 그 관계를 더 끈끈하게 합니다.
비가 오면 서로의 우산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립니다. 자신의 공간으로 급히 재촉하며 들어가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한 우산 속에 나와 함께 머무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그 빗 속에서 하나의 우산 안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은 사랑일 겁니다.


절기상 곡우인 오늘,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오네요.
사무실 복도 끝 창가에 서서 머그컵에 담긴 인스턴트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빗줄기를 봅니다.
우산 속에 함께 머물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이 빗줄기 속을 이리저리 거닐고 싶은 날입니다.


p.s.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신 M.P.R 님께 감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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