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 새로 시작한 세 가지 by 영두리

나이를 잘 세지 않고 사는, 아니 정확히 말해서 세기 싫어하는, 그러다보니 매번 철없다는 소리를 듣고 사는 저인데, 서른아홉이라는 나이가 되고 보니 왠지 알게 모르게 부담이 느껴집니다.
10개월 후면 제가, 제 주위 사람들이 마흔이라는 나이가 된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이 넘의 나이 따위, 없애버리면 안 되는 걸까요?

새해 목표를 '마지막 삼십 대, 즐겁고 후회없이 살자'였으며, 그에 대한 실천강령들이 하나하나 생겨납니다.
그 중 대표적인 걸로 세 가지를 꼽을 수 있겠네요.

하나.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너무 비싸서 차마 구입하기 주저하던 프랭클린 다이어리라는 것을 선물받았습니다.
어수선한 할 일과 스케쥴을 다이어리 양식에 맞춰서 정리하고 나니 한결 나아보입니다. 이전에도 메모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어수선한 할 일과 스케쥴만큼이나 어수선하게 메모해 두었었거든요.
그렇다고 업무가 효율적으로 처리된다거나 개인시간을 잘 조절한다거나 하는 효과는 없는 것 같습니다. 부작용으로 다이어리의 공란을 채울 일거리를 더 만드는 것 같기도 하고... ㅠ.ㅠ

둘. 어쩌다 보니 중창단에 들어갔습니다.
지난 1월 말, 모처럼 써니의 매장(한스케익 수지점)에서 저녁 시간을 때우고 있다가 동네 온라인 카페(네이버의 '수지사랑'이라는 지역 커뮤니티) 회원인 '멋진공간' 형님을 뵙습니다. 역시 동네 와인모임의 송년회 때 잠시 인사를 나눈 적 있었는데 케익과 커피를 드시러 찾아오셨더라구요. 잠깐 말씀을 나누다가 '오늘 뮤즈 남성회원들 술 한 잔 하기로 했는데 시간되면 같이 가자.'는 초대에 따라 나섭니다. '뮤즈'는 '수지사랑' 내에 있는 혼성중창단입니다.
엉겁결에 술자리에 합류해서 감자탕에 소주 한 잔 마시고 보니, 어느덧 베이스 파트를 맡고 있더군요. 절대고음불가라는 것을 눈치채신 게죠.
매주 일요일 오후에 약 1시간 정도 연습하고, 1시간 정도 담소 나누고, 절대 뒷풀이 없이 각자의 집으로 향합니다.
음정이 맞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옆에서 다른 베이스 파트가 잡아주기 전에는 매번 불협화음을 내는 느낌... ^^
그래도 나름대로 피아노도 좀 쳤고, 악보도 좀 본다 싶었는데, 연습하는 곡들이 수준 이상입니다.
처음에는 '아침이슬' 등으로 연습했던 것 같은데, 제가 들어간 후에는 '마법의 성',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연습하더니만, 어제는 '내가 천사의 말 한다 해도'로 확확 넘어가고 있습니다. 악보 중 피아노 반주를 눈여겨 보는데 적혀있는 코드가 장난 아닙니다. 온갖 음표는 다 달려있고, 코드에는 C, F, G 와 같은 일반적인 코드가 아니라 영문과 숫자가 사이좋게 조합되어 있는 녀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창단의 목표가 전국 콩쿨대회인지 뭔지도 모른 채 합류해서 3주차 연습을 마쳤습니다...만 조만간 방출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그런 시간이 참 좋습니다.
일요일에 잠시나마 일상에서 떠나서 좋은 음악을 즐기고 좋은 사람들과 담소를 나눌 수 있는 편안한 모임입니다.

셋.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회사 부장들에게 특명이 떨어졌더랍니다. 3월말에 필드에 나갈 수 있도록 연습해 둘 것.
맨날 컴퓨터 앞에 쳐박혀 있는 꼴이 안되어 보였던지 운동 좀 하라는 지시가 주어졌고, 손에 손을 잡고 건물 내 골프연습장에 가서 6개월짜리 등록을 저질러 버렸습니다. 그 후로 이제 딱 일주일 되었네요.
수 년 전에 아주 잠시 배웠던 적이 있었는데, 그립 잡는 법부터 어드레스 등등까지 아예 새로 배우고 있습니다.
운동과는 그닥 친하지 않아서 조금만 공백이 생겨도 늘 초보상태로 돌아가곤 하는데, 이번에는 부디 풀스윙까지만이라도 갈 수 있길, 드라이버 샷까지만이라도 터득할 수 있길 바래봅니다.
새벽 5시 50분에 일어나는 이 생활을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지만, 아직까지는 아침이 가뿐하고 상쾌한 느낌이네요.
비록 1주일만에 1.5Kg의 몸무게가 빠지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이제 토요일 과정으로 커피 바리스타 과정만 들어가면 새해에 목표한 몇몇 가지 사항이 현실화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서른아홉이 바쁘게 엮여서 시작됩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소처럼 진득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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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9/02/23 02:27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영두리 2009/02/23 12:20 #

    우왕, 누나~~~ 와라락~~~~
    이 공간에서 이렇게 연락할 수 있게 되네요. 이산가족 상봉의 장이라는...
    연락드리겠습니다. 보고싶어요.
  • 영누나 2009/02/24 01:33 # 삭제 답글

    이름자 하나 빼고...그래..그렇지..너무 반가와서 와라락 끌어 안고픈 맘이얌. 얌. 아까 통화도 많이 못해서 못내 서운하고..정말이지..십년이 넘은..나도 이제 이마에 자꾸 나이테가 생길라고 해서..좀 충격...오늘 밤에는 남편한테 우리 영모의 이야기를 풀어 놓았지..함 같이 꼬옥 보러 가자던데...너무 보고 싶다..써니도 함 인사할 기회가 있길..모쪼록 두 사람 건강 잘 챙기길 바래. 늘 조용하면서도 뭉클하게 바지런한 영모가 살 좀 쪘나..키 좀 더 컸나(?)...
  • 영두리 2009/02/24 10:06 #

    누나가 마흔이라는 게 믿기지 않네요. 절대 세월의 흔적이 묻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인데...
    (이 말 보고나면 이제 영영 얼굴 안 보여주는 건 아닌가 싶은... ^^)
    수지가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꼭 놀러오세요. 써니에게도 어제 밤에 누나 이야기를 했었답니다.
    참, 그리고... 전 그 때 그 모습과 그다지 변한 게 없는 듯. 키도, 몸무게도...
  • 영누나 2009/02/25 23:52 # 삭제 답글

    아까는 싸이에 있는 영두리 홈피를 들렀지..역시 하트모양의 연잎(?)과 흰꽃이 어쩌면... 알게 모르게 영모의 느낌을 읽을 수 있음에 스스로 대견스러워 하지. 몸도 마음도 세월이 느껴져..체력도 딸리고..그런데 이상하게 살빠지는 소린 안들리고..억울 ㅠㅠ
  • 영두리 2009/02/26 10:27 #

    작년 가을에 모 모임에서 사진 출사를 떠난 적이 있는데, 그 때 선운사에 들러서 찍었던 어리연이예요.
    연잎인데 손바닥 정도 되려나요? 그보다도 작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게 작은 연못에 둥둥 떠 있는 모습이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하며 재잘거리는 느낌이더라구요.
    앙증맞은 하얀 꽃도 그렇고...

    그런 감상에 젖었다가도 문득 손가락으로 나이를 세면서 현실로 돌아오죠. 나이가 몇 갠데... 하면서... ^^
  • 윤선옥 2009/02/27 01:07 # 삭제 답글

    호호호~~~정말로 영모가 서른 아홉이야~~~ ㅋㅋㅋ 나 오늘 날 샌다 '영두리'는 다 뒤지고 댕긴다 ㅎㅎㅎ
    갑작 넘 보고 싶고 어쩜 옛날 그대로고....내가 기억하는 영모는 까만 뿔테 안경.....

    내가 몇살일까????생각하기 싫지만 ㅠㅠㅠㅠ 지금 44 ㅋㅋㅋ 몸 사이즈면 얼매나 좋을꼬

    이런 만남이라도 방가방가..........오늘밤은 참으로 행복한거 같고 내가 요넘의 컴한테 인사를 해야할거 같으이

    낼 출근하려면 자야겠다...지금 근무지에서 마지막 출근인데 ㅋㅋㅋ 마무리는 깔끔하게 해야겠지???

    다음에 또 너 보러오마~~^**^
  • 영두리 2009/02/27 10:33 #

    누나, 나 때문에 밤 샌 거 아냐?
    눈 빨개서 환송회하면 직장 동료들이 너무너무 감격하지 않을까 싶어지는... ^^

    나이 이야기 하니까 정말 세월 실감하겠네요.
    정말 나이 까먹고 지내는데, 내 나이 서른아홉이라는 건 생각 안하고 누나 나이 마흔넷이라는 것에 놀라고 있다는...
    언제나 열려 있는 공간이니 종종 놀러오세요.
  • 영누나 2009/02/27 01:39 # 삭제 답글

    영모 조켔다..우리 언니 잠 못자네..그런데..영모 옛날 까만 뿔테...안경 썼었나???
  • 영두리 2009/02/27 10:36 #

    어느 땐가 뿔테안경 쓴 적 있었어요. 고등학교 끝날 무렵 정도였나? 대학 초반에도 그랬던 듯.
    뿔테 쓰면 정말 전형적인 학구파처럼 보여서 - 실제로는 공부, 연구와 거리가 멀다라는 것을 스스로도 알기에 - 얇은 테로 바꾸었죠.
    다시 한 번 뿔테안경에 도전해 볼까나 싶기도... ㅋㅋ
  • 영누나 2009/02/27 15:44 # 삭제 답글

    나도 테 바꿔야하는디...이번엔 얇은 걸로 할까부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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