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신료 정액제는 타당한가에 대한 단상 by 영두리

지난 토요일, 대중목욕탕에 들러서 얻은 화두입니다.

예전에는 스스로 해결하던 '세신(때밀이)' 절차를, 요즘에는 두 번에 한 번 꼴로 전문가의 손길에 맡기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서는 전문가에게 맡길 때 1만 2천원(예전에는 1만원 한 장으로 족했는데 여기에도 물가상승 현상이 반영되었더군요.)이라는 비용이 드는데, 그 가격이 비싸다고 여겨질 때에는 스스로 알아서 노동을 하고, 싸게 여겨질 때에는 전문가에게 위탁하게 됩니다.
전문가에게 맡기는 경우는 주로 '자체 포상' 개념이 따를 때입니다. 가령, '넌 이번 주에 충분히 수고했으니 그 정도 서비스를 받는 건 당연해'라든지, '밤 늦게 술을 마시고도 끝까지 심야광역버스를 이용하여 택시비를 벌었으니 그 정도 보상은 필요해' 등의 판단이 서면 아낌없이 비용을 지불하고 몸을 맡깁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전문가의 지시대로 세신작업대 위에서 뒹굴뒹굴하면 됩니다.
그 사람도 그다지 말수이 많은 편은 아닙니다. 기껏 한다는 말이 '거기 누우세요.' '옆으로 돌아 누우세요.' '엎드리세요.' '다시 바로 누우세요.' '다 되었습니다. 내려오세요.' 정도이고, 안면을 텄다 싶으면 말하기도 귀찮다는 듯 때타월 낀 손으로 손뼉을 쳐서 자세를 지시하기도 합니다.
사실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할 수 없는 불편한 상태인데, 가끔 겪게 되는 그런 상태가 묘하게 편한, 누군가에게 서비스를 받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쩌면 세신 전문가에게 몸을 맡기는 것은 미용실에서 이발하거나 자동세차장에서 세차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특별히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무언가 알아서 진행됩니다. 하얀 보자기를 두르고 앉아서 꾸벅꾸벅 졸다보면 어느새 바뀌어 있는 헤어스타일을 본다든지, 컴컴한 터널 안으로 차를 몰아 들어서기만 하면 반짝거리는 새차가 되어서 나온다든지 하는 것, 돈으로 살 수 있는 참으로 편리한 서비스입니다.

옆 세신대 위에 덩치 큰 아저씨 한 분이 보입니다.
제 체형과 비교해 볼 때 위아래 길이로 따지자면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앞뒤 두께로 보면 대략 두 배에 이르고, 좌우 폭으로 봐도 1.5 배는 됨직해 보입니다. 세신대가 비좁고 버거워 보입니다. 그 아저씨를 담당한 전문가는 또한 무척 힘겨워 보입니다.
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저씨랑 제가 지불해야 할 댓가가 1만 2천원으로 같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이건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신장이 비슷한 허리 사이즈 36인치인 사람과 허리 사이즈 30인치인 사람을 비교하는 경우, 때를 밀어야만 하는 '세신 대상 인체표면적'도 후자가 대략 5/6 밖에 되지 않을 것 같다는 것. 즉, 36인치의 사람에게 1만 2천원을 받는다면, 30인치인 사람에게는 1만원만 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드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면적도 다를 뿐더러 그만큼 노동의 양과 질도 다를 거라 생각되는데 같은 요금을 낸다는 것은 불공정한 거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장면도 보통과 곱배기의 가격이 다르듯, 휘발유도 일반 휘발유와 프리미엄 휘발유의 가격이 다르듯, 분명히 여기에도 서로 다른 구석이 존재하는데 어느 목욕탕을 가더라도 만인이 평등한 '정액제'입니다.
'때밀이 12,000원'이라는 문구가 '기본 1만원, 허리 33인치 이상은 1만 1천원, 허리 36인치 이상은 1만 2천원' 등과 같이 '면적비례제'로 개선되어야 합당하지 않나 하는 개혁 의지가 불쑥 솟습니다. 하다못해 손세차장에서도 소형차와 중형차를 구별하고, 일반 승용차와 SUV를 구별해서 차등 요금을 받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이내 제 주변을 돌아보며 그 불순한 생각을 접습니다.
그 가격의 기준이라는 것이 '면적비례제'이 아닌 '때 종량제'였더라면 저 역시 세신료 할증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리라는 판단이 들었거든요. 슬쩍 이만하면 본전은 건진 것 같다고 내심 기뻐하면서 비누거품 잔뜩 묻힌 몸을 일으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샤워대로 향합니다.

며칠 지난 오늘...
과연, '세신료 정액제'는 타당한 건지 궁금해졌습니다.
그 대안으로 '면적비례제'도 있을 수 있고, '때 종량제'도 있을 수 있고, 그 둘을 합한 '때 밀도에 따른 할증제'도 있을 것 같은데, 현실적으로 적용하는 데에는 기준 마련도 복잡하고 측정 방식도 복잡할 것 같기도 하구요.
목욕업협회 같은 곳에 한 번 건의해 볼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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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박선수 2008/12/09 22:47 # 삭제 답글

    세신료 차등화되면...모두들 인치 줄이느라 땀좀 빼겠는걸요? ^^
  • 영두리 2008/12/10 18:13 #

    역효과로 마른 사람들이 세신사들에게 차별대우 받을지도 모르죠. 세신거부... 뭐 그런...
    비슷한 노동량인데 수익이 줄어든다고 생각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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