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었습니다 ├ 영두리의 사는 이야기

지난 토요일.
귀한 케익 배송 주문이 들어왔답니다.
혹시 동교동까지 케익 배송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저희 지점 배송지역에서는 벗어난다고 말씀드렸는데, 의뢰하신 분의 말씀을 듣고 보니 배송을 안해드릴 수가 없겠더라구요. 친형님께서 예전에 모시고 계셨던 모 전직 관료의 사모님께서 우리 가게의 티라미수 맛이 인상적이셨던지, 동교동에 계시는 이희호 전 대통령 영부인 생신 축하 케익으로 꼭 보내드리고 싶다고 요청이 왔었던 겁니다. 다른 분도 아니고 평소 존경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관련된 일인데 마다할 수 없죠.

그리고, 일요일.
기왕 간만에 서울 시내에 나선 김에 데이트 채비를 합니다.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고 갔음에도 첫 골목을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동교동 일대를 크게 한 바퀴 빙 돕니다. 경비초소가 있고, 대문에 경비가 딸려 있고, 담 주위로 CCTV 들이 보이는 걸 보니 김대중 전 대통령이 머무시는 곳을 제대로 찾은 것 같습니다. 경비에게 자초지종을 말하니 대문 안으로 안내를 해줍니다. 써니가 들어가서 케익을 전달해주고 나오네요. 미션 완료.

뭘 먹고 싶냐고 묻습니다. 저도 뭘 먹고 싶냐고 묻습니다. 늘 그렇습니다. 먹는 걸 정하는 데 꽤 어렵습니다.
막상 홍대 근처에 나왔는데 뾰족히 떠오르는 곳이 없습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사전 정보 좀 챙기고 나올 걸 하는 후회가 몰려옵니다. 너무 오래간만에 하는 홍대 외출이라서 동네 자체가 어색할 정도입니다.

차를 몰고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문득 아주 예전 기억을 더듬어 '아지오(AGIO)'를 떠올리고는 그곳에 가서 스파게티를 먹자고 합니다. 홍대 아지오에 언제 들렀었는지는 까마득한 기억입니다.
예전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는 앞뜰이 있었고, 그곳에서 여러 사람들이 가을 햇살을 쬐며 음식을 나누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초심은 스파게티를 먹으려고 했으나, 피자 그림을 보니 피자도 먹고 싶고, 그 둘만 먹기에는 왠지 느끼해보여서 샐러드까지 추가하니 한 상이 차려집니다. 평소 같으면 고소한 크림 스파게티가 끌렸을 터이나, 깔끔하게 올리브 오일로 만든 해산물 제품이 더 마음에 들어서 그 녀석으로 정합니다. 버섯으로 토핑한 피자를 주문하고, 모짜렐라 치즈와 토마토를 곁들인 샐러드도 추가합니다.

지난 세월에 아지오도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환하게 바뀌었다는 느낌도 있지만 분주하고 왁자지끌한 분위기는 예전의 멋을 그립게 합니다.



차려진 음식을 남김없이 먹은 후 포만감 가득 한 상태로 나와서 홍대에 나오면 들러보고자 벼르고 있던 커피랩을 찾아갑니다.
햇볕 잘 드는 창가에 앉아서 아포가또와 카페라떼를 주문합니다. 아포가또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세 스쿱이나 주더군요. 그 덕분에 기본 에스프레소로는 모자라 에스프레소 샷을 하나 더 추가해서 먹습니다. 라테아트를 얹은 카페라테의 곱고 묵직한 우유거품이 인상적입니다. 대개 그렇듯 사진 찍고 휘휘 저어 마시고 말았다는...
커피랩 공간의 독특한 인테리어를 즐기고, 써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햇볕이 무릎에 쬐는 느낌이 이제 싫지 않은 가을입니다.

22일이 생일이라고, 생일 선물로 뭐 필요한 게 없냐고 묻습니다.
평소 배낭이 없어서 불편했던 게 떠올라서 배낭 하나 선물해달라고 제의합니다. 기왕이면 오래 쓸 수 있도록 좋은 거 사라며, 백화점 콜럼비아 매장에 가서 32리터 짜리 등산가방을 고릅니다. 언제 써먹을지 모르지만 가방만 봐도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뜹니다. 아무래도 아직도 사용하지 못한 휴가를 조만간 받아서 훌쩍 떠나야 할까 봅니다.

생일을 축하해주기라도 하듯이 서울시에서는 시민들에게 대중교통 무료승차 이벤트를 열어주더군요. 아는 지인들이 생일 아침 전화해서 '덕분에 공짜로 잘 탔다'고 합니다.
출근길에 써니와 함께 매장에 들러 티라미수 케익과 떡을 챙깁니다. 월요일 오전 8시부터 있는 주간회의가 11시 30분 께에 끝나는 바람에 케익과 떡이 난데없이 점심 대체재가 되어 버립니다. 생일에 직접 주인공이 케익을 챙기는 희안한 케이스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차마 케익을 사 줄 수 없는... ^^

제 생일은 한스 수지점의 생일과 같습니다. 2년 전 그 날, 일부러 제 생일에 맞춰서 오픈을 했거든요.
주간 근무직원인 주영, 주희씨와, 주말 직원인 정윤씨까지 어울려서 간단하게 생일 파티를 합니다. 돼지 캐릭터가 촘촘히 박힌 파란색 넥타이를 선물 받습니다. 부디 살 좀 찌길 바란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한스 회식치고는 상당히 이른 시간인 12시 조금 넘은 시각에 자리를 파합니다.

큰형님으로부터는 새로 개정번역된 성경을 받습니다. 언젠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만이라도 1독을 해야 할 텐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는 않네요. 어머니는 생일 한 달 전에 갈치 한 박스를 보내며 '네 생일 선물 미리 준다'고 하시더니 나주 배 한 박스를 또 보내주셨습니다. 장모님도 웃도리 하나 사서 선물해 주십니다. 처가 막내외삼촌 숙모는 백화점 상품권을 선물합니다. 생일날 먹은 떡도 사실 숙모가 선물한 것이었었구요. 또한, 팀원들이 USB 메모리를 선물로 주문했다고 합니다. 워낙 물건 사는데 주저하는 편이라서, USB 메모리를 알아보고 선뜻 사지 못하던 제 모습을 캐치했나 봅니다.
예기치 않았던 선물을 받고 어린애마냥 그저 좋아라 합니다.

서른 넘으면서 나이 먹는 느낌이 시큰둥하게 여겨져 생일이 달갑지 않던 적이 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마흔 가까워지는 이 때에 들어서는 나이 한 살 더 먹어서 좋고 싫고를 떠나서 그냥 생일을 생일 그대로 인정하고 축하받아야 할 것은 받고 싶어지네요.
그렇게 생일을 치루고, 만 나이마저 한 살 더 먹고, 철이 채 들기도 전에 벌써 마흔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생일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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