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 연휴 끝날.
매장에 머물다가 답답해서 외출을 했는데, 외출이라고 한 곳이 결국 멀리 뜨지도 못하고 고작 신봉동 카페다.
케냐 AA와 하우스 블랜딩 드립 커피를 한 잔씩 하고, 리필로는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더 하면서, 커피 잡지를 뒤적거린다.
매장 리모델링 이후 한동안 드립 커피를 내리지 않았었다는 걸 깨닫는다. 일부러 진하게 내려달라고 한 케냐 AA의 바디감이, 원래 중후한 편인데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잡지를 보다가, 스마트폰을 보다가, 이야기를 꺼낸다.
여행 가자, 고 이야기를 꺼냈다가 서로의 여행관이 조금 다름을 다시금 느낀다.
내 속에는 역마살 낀 망아지 한 마리가 살고 있어서 틈만 나면 떠나자고 부추긴다. 앞뒤 가리지 않고 길에 나서라고, 그러면 길이 알아서 안내할 거라며 종용한다.
써니는 여행보다는 생활 안정을 이야기한다. 좀더 뒤에, 좀더 갖춘 다음에...
나는 체력이 따라주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떠나자고 말하고, 써니는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미뤘다.
내 머리 속에는 한 번 떠나면 최소 한 달 이상 느긋하게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는 여행(오지라도 좋다!!)이 자리잡았다면, 써니는 길어야 열흘, 짧게는 일주일 정도의 유럽 여행을 그리고 있다.
혼자 떠날 상황은 아니라서 여행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는다.
잠시 침묵하다가 '취미' 이야기를 꺼낸다.
내가 정말 취미 수준으로 하고 있는 '사진', '노래', '습작' 같은 거.
좀 전문적으로 하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사실 '함께' 취미를 즐겼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고 말한다.
이제 곧 결혼 14주년이 되는데, 함께 하는 것이 그리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커피'와 '케익' 정도?
신혼 초반, 이 부분을 고민하다가 선택했던 것이 '보드게임'이라는 것이었는데, 2인용 보드게임 대부분이 그렇듯 보드게임을 시작할 때 분위기와 마무리할 때의 분위기는 사실 사뭇 다르다. 결국 이 역시 끝내는 개인 취미로 되어 버렸고, 책을 한 권 남기긴 했지만(http://duri022.egloos.com/1972048) 길게 함께 할 취미로 남지는 않았다.
- '맛집탐방' 이런 거 할까?
- 그런 거라면 괜찮겠는데? 근데 토요일 일요일에는 사람 많지 않을까? 가게도 챙겨야 할 거고...
- 그럼 평일 저녁으로 정해서 한 달에 한두 군데씩 순회하는 거야.
- 아예 요일을 잡을까? 한 달에 두 번 어때?
- 그러면, 한 주의 한가운데 있는 수요일 저녁으로 하자. 첫째 셋째 주 수요일.
- 한 번은 자기가, 한 번은 내가 정하고, 다른 사람은 무조건 따르기.
- 그러면 한 사람은 메뉴 정하고, 다른 사람은 계산하기로 하자.
- 고거 괜찮네.
순식간에 합의가 이뤄졌다.
스마트폰 달력을 열어서 2월 1일부터 하기로 하고, 우선은 내가 정하고 써니가 사기로 한다.
아예 성문화하기 위해서 간단하게 A4 용지에 적고 싸인하고 휴대폰으로 촬영해서 메시지로 이미지 파일을 전송해서 다짐해 둔다.
드디어, 둘이 함께 즐길거리를 하나 찾았다.
둘만의 이벤트 제목은 '나, 이거 먹고 싶어~'로 정한다. 먹고 싶다고 말하면 사주는 거다.
왠지 둘이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하나 건진 듯 해서 뿌듯해하는 밤. ^^
계획대로라면 한 달에 두 번 연재가 가능한 포스트일 듯 해서, 아예 블로그에 메뉴를 만들고 첫 글을 작성한다.
Since 2012.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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